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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허재는 농구천재가 아니다."
작성자 : 국비닷컴 | 날짜 :
04.03.23 06:24
| 조회 :
4605
맘에 드는 기사가 있어서 올려봅니다.<br /> <br /> 출처 : 고찬유기자의 블로그입니다 http://blog.hankooki.com/jutdae <br /> <br /> '은퇴, 누가요? 허재가? 난 몰랐어.' <br /> 10일 오전 중앙대 정봉섭 체육부장과 통화했다. 8일 은퇴를 선언한 허재와의 대담을 섭외하기 위한 전화였다. 중국 청도에 출장을 다녀온 정 부장은 일단 취재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'언제 (은퇴) 했냐? 확인해봐야겠다'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. <br /> <br /> 허재와 정 부장의 막역한 인연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. 혹자는 둘의 만남이 없었다면 한국 농구의 틀이 바뀌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. 바쁜 와중에도 서로 안부전화를 잊지 않는 사이인 터라 기자의 전화를 받고 허재의 은퇴 사실을 알게 된 정 부장이 섭섭했을 터. 허재는 '자신도 얼떨결에 한 은퇴선언인데다 정 부장이 외국에 나가 있어서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'고 말했다. <br /> <br /> 물론 정 부장도 이번 시즌이 끝나면 허재가 은퇴할 거란 사실은 알고 있었다. 그가 안타까운 것은 수제자 허재의 은퇴 선언 자리에 자신이 없었다는 것, 허재 농구인생의 고향인 중앙대 후배들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. <br /> <br /> 취재 일정은 정해졌다. 원래 허재 단독 인터뷰를 준비했을 땐 기자더러 원주에 와달라고 요청했던 허재는 스승과의 대담이라고 하자 자기가 직접 안성으로 가겠노라고 했다. 둘의 끈끈함을 알 수 있는 대목. <br /> <br /> 13일 허재가 스승 정봉섭 체육부장을 만나기 위해 안성 중앙대 캠퍼스를 찾았다. 마침 프로농구 플레이오프가 시작된 날. 경기 관전을 위해 인터뷰를 1시간(낮12~오후1시)으로 잡았던 허재는 스승과의 담소가 길어져 결국 오후3시에 서울로 올라갔다. <br /> <br /> 두 사람의 대담은 한국일보 3월17일 B14면에 실렸습니다. 하지만 맛있는 게장백반도 제쳐두고 열심히 적어둔 못다한 이야기가 아까워 취재수첩에 괴발개발 휘갈긴 내용을 올려볼까 합니다. 다소 길지만 허재팬이라면 관심이 갈 듯도 하네요. 그럼 시작해볼까요. <br /> <br /> 1977년 정 부장이 우연히 상명초등학교에서 호리호리 귀여운 꼬마가 볼을 요리조리 다루는 걸 보곤 '고놈 귀엽네' 했다는 게 첫 만남이라네요.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허재는 자신의 농구실력에 감탄하는 사람이 많아 정 부장도 동네 아저씨쯤으로 생각했던지 기억에 없었습니다.<br /> <br /> 허재는 용산중에 입학한 뒤 비로소 당시 중앙대 감독이던 정 부장을 기억하는데요. 중학교 1학년이던 허재는 가끔 중대 농구팀을 이끌고 용산중 체육관을 찾은 그 높은 분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만 꾸벅꾸벅 숙였다고 하네요.<br /> <br /> 키는 작지만 드리블 실력이 만만치 않은 허재를 보고 놀릴 양으로 허재의 가방을 뒤져본 정 부장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. 가방에서 꺼낸 시험지가 모두 100, 100, 100점인 겁니다. 정 부장은 '기특한 나머지 불알을 쓰윽 한번 만져줬다'고 회고합니다.<br /> <br /> 두주불사 허재의 천방치축 행동은 몰라도 농구에 관한 한 지적할 게 없다는 게 정 부장의 말입니다.<br /> <br /> 정 부장은 허재가 결코 '농구천재가 아니다'고 강조합니다. 사람들이 '농구천재' 허재만 기억하지 그 칭호를 얻기까지 허재의 피나는 노력을 모른다는 거죠. <br /> <br /> 실제 허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꼭두새벽에 일어나 부친 허준씨의 참관 아래 집 마당에 마련한 농구골대에 매일 200개씩 슛을 던졌다고 하네요. 정 부장은 그런 허재의 습관이 대학 와서도 쭉 이어졌다고 했습니다.<br /> <br /> 대학 4년 내내 '초가'라고 불렀던 중대 안성캠퍼스 농구장에서 정 부장을 비롯한 중대 농구팀이 동거동락을 했으니 알리바이가 확실하다는 거죠.<br /> <br /> 학교 다닐 때 '허재가 술마시고 사고 쳤다 카드라. 양주 몇 병을 깠다 카드라' 소문이 날 때마다 정 부장이 두팔 걷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죠.<br /> <br /> 사실 허재는 '풍운아'로 불릴 만큼 자기 주장이 강한 선수입니다. 감독이 지시하면 들은 체도 안하고 딴청을 부리거나 씨~익 웃거나 한다네요. 감독이 싫어할 정도로.<br /> <br /> 하지만 정 부장에게만은 달랐습니다. 정 부장은 '허재를 잡아야 농구팀을 잡는다는 심정으로 허재가 실수할 때마다 선수들 앞에서 보란 듯이 매질을 했답니다. 근런데 웬걸, 허재는 이빨이 부러져도 씨익 웃고 만다'고 회고합니다. 정 부장 왈 '(김)유택이는 한대 맞으면 백보드 뒤로 가서 울고 있어요' 합니다.<br /> <br /> 허재가 왜 그랬을까요? 허재는 '감독님이 자신을 믿었기 때문'이라고 합니다. 다른 감독이나 지도자는 '이렇게 해라, 저렇게 해라' 틀에 박힌 농구를 강요하는 데 정 감독은 '니 맘대로 해라. 3류(정 부장은 고등학교 시절 농구선수였습니다. 주전자 나르는 후보였지만)한테 배우면 3류밖에 안돼'라고 했다네요. <br /> <br /> 그런 신뢰 속에 태어난 게 허재식 고공농구고 테크닉 농구죠. 외곽포 위주였던 우리 농구에 미국식 농구를 퍼뜨린 장본인이 된 것도 정 부장의 가르침과 허재의 남다른 열정 때문입니다.<br /> <br /> 심지어 허재를 가르친 정 부장도 놀랄 플레이가 속출했다고 합니다. '한 번은 뒤로 돌아가는데 공을 휙 돌리는 거야 '에라 이 미친 놈아!' 욕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공이 림으로 쏙 들어가는 거야. 내가 다 재밌더라니까. 그러니 관중들은 미쳐나지.'<br /> <br /> 정 부장은 그런 허재의 실력이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. 집중력이 좋아서 일단 운동을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답니다. 함께 술을 마셔 다른 선수들은 다 푹푹 쓰러지는 데도 허재만은 그 고된 훈련을 끝까지 끝냈다고 합니다. <br /> <br /> 정 부장은 허재를 '승부를 할줄 아는 선수'라고 평했습니다. 2등을 하면 못 견디는 성격이라 술 역시 주야장창 마시고 술값도 꼭 자신이 계산했다고 합니다. 코트에선 오죽했겠습니까? <br /> <br /> 한번은 중앙대가 실업 최강 삼성과 농구대잔치 결승을 벌이는데 허재 다리에 쥐가 나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답니다. 교체멤버도 없던 터라 정 부장이 속으로 '이제 졌구나!' 하는데 허재가 갑자기 '옷핀! 옷핀!' 하더라는 겁니다. 허겁지겁 핀을 구해주니까 허재가 핀으로 제 장딴지를 죽어라 수십차례 찌르고는 벌떡 일어나더라는 겁니다. 경기는 중대의 승리로 끝났죠.<br /> <br /> 허재와 정 부장은 옛날이 그립다고 했습니다. 정 부장은 '참 이쁘게 농구했다'고 그 시절을 회고했고 허재는 '참으로 인간적인' 세월이었다고 기억합니다. <br /> <br /> 초가 야간 훈련이 끝나면 어김없이 내오는 정 부장의 토스트와 장작 패서 끓여먹는 솥밥, 땅 속 깊이 묻은 독에 보관한 김치... 가끔 돼지라도 잡는 날이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네요.<br /> <br /> 오직 농구만을 위해 뭉친 그 시절 가족적인 분위기의 중대가 있었기에 고대와 연대라는 대학농구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는 거죠. 지금도 명절이나 정 부장의 생일이 돌아오면 허재의 '야~ 가자' 한마디에 똘똘 뭉쳐 정 부장을 찾는답니다. 허재는 '내가 은퇴하면 (강)동희가 해야지' 합니다.<br /> <br /> 허재의 신들린 플레이가 농구계를 발칵 뒤집어 엎자 그에 따른 모략도 많았다는 게 정 부장의 말입니다. 허재 본인은 '유명세'라고 하더군요.<br /> <br /> 술만 마시면 사고 친다, 마약 먹고 경기한다, 심지어 숨겨둔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터졌죠. 정 부장은 그때마다 속앓이를 했다고 하네요. 허재를 믿으면서도 설마설마 하고 소문의 근원지를 알게 되면 바로 달려가 따지고 엉겨붙고 하는 바람에 농구계에서 찬밥 신세가 되기도 했답니다.<br /> <br /> 그뿐인가요. 코트에서 상대 선수들이 몸싸움을 위장해 허재를 폭행하면 어김없이 정 부장이 뛰쳐나가 싸우느라 4번이나 제명당했죠. 정 부장은 '허재가 아들같은 놈'이라고 합디다.<br /> <br /> 허재가 중대를 택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진 터라 생략하겠습니다. 허재 부친과 친분이 있던 정 부장이 5년 넘게 허재 부친과 낚시를 하며 세월을 낚는 대신 허재를 낚은 셈이 됐죠.<br /> <br /> 허재 자신도 '자기가 가서 승리할 수 있는 팀을 원했다'고 합디다. 대학뿐 아니라 실업팀 선택도 자신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곳으로 골랐다고 하네요.<br /> <br /> 정 부장이 미안한건 '중대 신화'를 일구며 승승장구했지만 허재에겐 딱 한번 최우수선수상을 선사한 점. 선배부터 차근차근 상을 챙겨주다보니 전력이 약해진 허재 4학년 땐 주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는 거죠. 다행히 최우수선수상은 받았죠. 허재는 '상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이기는 게 좋았다'고 당시를 기억합니다.<br /> <br />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하는 허재는 은퇴 선언장에서 '선수들이 따라오고 이해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'고 했습니다. 그 모델은 바로 정 부장이구요. <br /> <br /> 정 부장은 늘 허재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. '니가 이충희보다 슛이 좋냐, 강동희보다 드리블이 좋냐, 표필상보다 힘이 좋냐' 등등. 정 부장은 그저 허재가 가지고 있는 재능에 맞는 자리만 줬다는 겁니다. 농구는 허재 혼자 했다는 거죠. 허슬패스 비하인드백패스 가랭이바운드 등 고난도 기술은 혼자 수백차례 연습하면서 연마했답니다. 정 부장은 '내가 기술을 가르쳐서 지금의 허재가 있다면 왜 다시 허재같은 선수가 안 나오겠냐'며 되묻습니다.<br /> <br /> 다른 감독 같으면 쓸데 없는 짓 한다며 그 시간에 슛이나 더 쏘라고 했을 테지만 정 부장은 그대로 놔뒀습니다. '일단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면 별 쇼를 다해요. 보고 있으면 아주 흥이 나.'<br /> <br /> 그래서 정 부장의 비장의 작전 카드는 늘 '니 맘대로 해라'이다. '세계적인 농구 추세가 작전이 없습니다. 개인 능력이 뛰어난 다섯 명이 나가서 뛰어야 재밌지, 칠판에다 말 올리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 재미가 없어.'<br /> <br /> 허재 역시 '재미있게 이기는 것이 유일한 작전'이라고 동의하더군요. <br /> <br /> 정 부장은 '허재가 그 수많은 시련과 죽을 고비, 모략을 견디어내고 선수로서 장수하고 무사히 은퇴한 게 감사하다'고 했습니다.<br /> <br /> 허재는 스승이 말을 하는 동안 잔이 비면 꼭 채워주고 음식도 계속 권했습니다. 기껏해야 '운동 잘하냐?' '건강하세요?'가 고작이지만 꼬박꼬박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.<br /> <br /> 정 부장의 걱정 한 토막. '허재가 오빠부대의 주역이고 KBL 태동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 지도자로 돌아올 수 있는 보장이 없어요. 내가 이런 말 하면 '지 새끼 지가 감싼다'고 할테니 나서지도 못하고... 하지만 난 믿어 '한다면 꼭 하는 놈'이거든.'<br /> <br /> 두 사람은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헤어질줄 모르고 귀를 맞대고 소곤소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디다. <br /> <br /> <br /> <br /> 정말 긴 글이 됐는데요, 몇 가지 정리하면...<br /> <br /> 1. 성공하려면 승부욕을 가지라. <br /> <br /> 2. 천재는 노력하는 자의 또다른 이름.<br /> <br /> 3.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.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지...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죠? <br /> <br /> 4. 진짜 스승은 자신의 기술이나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제자가 있을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.<br /> <br /> 마지막으로 술 마시고 사고치지마라.(^^;)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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